러닝머신에서 배운 희망의 법칙

 

퇴근하고 알바까지 끝내고 집에 들어오면 밤 11시가 넘는다. 몸은 천근만근인데, 이상하게 러닝머신 앞에만 서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닌데, 운동화 끈을 다시 묶고, 조용히 시동 버튼을 누른다. 처음 5분은 늘 힘겹다. 폐 질환 진단을 받은 뒤로 호흡은 금세 가빠지고, 종아리는 저릿하게 뻐근해온다. 그런데도 나는 매일 이 러닝머신 위에 오른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이 기계 위에서 ‘희망의 법칙’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러닝머신에서 배운 희망의 법칙


일상이 무너졌던 그날 이후

직장에서는 하루 종일 앉아 컴퓨터를 보고, 저녁에는 주유소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다. 처음엔 단순히 생활비 때문이었는데, 나중엔 집에 있으면 생각이 많아져서라도 일하러 나가게 됐다. 병을 진단받았을 때, 사람들은 흔히 그러잖아요. “충분히 쉬어야 해요.” “너무 무리하지 마요.” 그런데 내 상황은 그럴 수 없었고, 마음도 따라주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더 불안하고, 더 아팠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묘하게도 러닝머신이 나를 부른다. 처음엔 그냥 움직이고 싶어서 시작한 거였다. 밖에 나갈 기운은 없고, 시간도 없으니까 집 한구석에 놓인 러닝머신 위가 내 유일한 탈출구 같았다. 속도는 시속 3km, 천천히 걷는 수준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하루하루 반복하다 보니 내 마음이 변했다.

속도보다 중요한 건 ‘지속’이라는 걸 알았다

처음 몇 번은 너무 힘들었다. 다리에 쥐도 잘 나고, 숨도 가빴고, 그냥 내려오고 싶은 충동이 수십 번씩 들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그냥 걸어만 봐도 괜찮지 않을까?” 운동처럼 하지 말고, 그냥 내 감정 흘리는 시간처럼 써보자는 마음으로 올라섰다.

그러고 나서 달라졌다. 목표를 정하지 않으니 부담이 줄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몸도 조금씩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5분도 버거웠는데, 지금은 20분까지 걷는다. 아직 달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버텼다는 사실이다.

러닝머신 위에서 배운 건 단순한 체력 이상이었다. **속도보다 중요한 건, 내려오지 않는 거구나.** 멈추지 않고, 비록 천천히라도 계속 걷는다는 것. 그게 지금 나한테는 가장 중요한 희망이었다.

삶은 여전히 팍팍하지만, 내 발은 매일 걷는다

사실 말이 쉽지, 회사 다니고 주유소 알바까지 하는 생활 속에서 병까지 안고 사는 건 정말 쉽지 않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나조차도 가끔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라는 회의감에 빠진다. 하지만 매일 밤, 조용한 방 안에서 러닝머신에 올라서면 그런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걸으면서 드는 생각들이 있다. 오늘도 별일 없이 하루를 끝냈다는 안도감, 지금은 버티는 게 전부지만 언젠간 달릴 수 있을 거란 희망,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아직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각.**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러닝머신 위를 걷는 소소한 습관일 수 있다. 하지만 나한테는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몸은 힘들고 숨은 가쁘지만, 러닝머신 위에 서 있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나를 믿게 된다.

결론 – 계속 걷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희망이다

러닝머신은 그저 운동기구일 뿐이다. 하지만 매일 밤, 나는 그 위에서 아주 중요한 걸 배운다. 포기하고 싶을 때 멈추지 않는 법,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박수치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은 언젠가 달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오늘도 걷고 있다는 사실에서 자란다는 것.**

나처럼 하루하루 버티며 사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천천히라도 괜찮으니까, 계속 걷자. 러닝머신 위든, 인생이든, 발만 떼고 있으면 괜찮다. 그게 바로 우리가 배운 희망의 법칙이다.